월드컵 개최국 우승 시대가 끝난 결정적 이유
월드컵에서 개최국 버프는 오랫동안 당연한 공식처럼 여겨졌다.
익숙한 잔디와 경기장, 시차 적응이 필요 없는 최상의 컨디션, 여기에 자국 팬들의 압도적인 응원까지 더해지면 개최국은 객관적인 전력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실제로 월드컵 역사에서도 안방의 이점을 앞세워 개최국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사례는 총 6번이나 있었다.
1930년 초대 대회 우승국 우루과이를 시작으로 이탈리아(1934), 잉글랜드(1966), 서독(1974), 아르헨티나(1978), 프랑스(1998)가 자국에서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개최국이 우승컵을 차지하는 장면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
21세기 들어 여러 차례 월드컵이 열렸지만 개최국의 우승 실패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중이다.
그렇다면 한때 절대적인 힘을 발휘했던 ‘개최국 이점’은 왜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1. 시차와 기후의 장벽이 낮아진 현대 축구
과거에는 다른 대륙이나 낯선 국가로 원정을 떠나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었다.
기후와 잔디 상태, 현지 음식, 장거리 이동, 시차 등 문화적 환경적 차이가 원정 팀에게 거대한 진입장벽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현대 축구는 완벽에 가까운 세계화를 이뤘다.
전 세계 축구 인프라와 경기장 관리 시스템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표준화됐고 스포츠 과학과 영양학도 빠르게 발전했다.
원정 팀 역시 전용기와 맞춤형 식단, 첨단 회복 장비, 전문 의료진을 활용해 시차와 환경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과거 개최국만 누릴 수 있었던 편안함이 이제는 큰 차이를 만들기 어려워진 것이다.
2. 유럽 빅리그가 없애버린 정보의 차이
과거에는 자국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을 중심으로 대표팀을 구성하는 경우가 많았다.
상대 팀 선수들과 자주 맞붙을 기회가 부족했고 플레이 스타일이나 개인적인 특징을 파악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브라질 선수든 프랑스 선수든 아시아나 아프리카 출신 선수든 세계적인 기량을 갖춘 선수 대부분이 유럽 빅리그에 모여 매주 경쟁하고 있다.
대표팀에서는 적으로 만나더라도 소속팀에서는 동료로 함께 뛰는 경우도 흔하다.
서로의 장점과 약점, 움직임과 습관까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개최국이 정보적인 우위를 가져가기 어려워졌다.

3. 개최국 버프보다 강한 정상급 선수층
과거에는 개최국의 분위기와 홈팬들의 응원이 경기 흐름을 바꾸는 결정적인 힘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현대 월드컵은 한두 명의 스타 선수나 홈 분위기만으로 우승하기 어려운 대회가 됐다.
조별리그부터 결승까지 긴 일정을 소화하려면 선발 선수뿐 아니라 벤치 자원까지 고른 전력을 갖춰야 한다.
부상과 경고 누적, 체력 저하 같은 변수가 반복되는 만큼 선수층이 얇은 개최국은 대회 후반으로 갈수록 한계를 드러낼 가능성이 크다.
결국 개최국이라는 조건보다 얼마나 많은 정상급 선수를 보유하고 있는지가 우승 경쟁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4. 넓어진 개최 지역, 줄어든 안방 효과
월드컵 참가국과 대회 규모가 커지면서 단일 국가 개최보다는 여러 국가가 함께 대회를 여는 공동 개최 방식이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북중미 월드컵만 해도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 3개국이 공동으로 개최한다.
개최국이라고 해도 경기 일정에 따라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해야 할 수 있으며 경기장과 기후 조건도 지역마다 크게 달라진다.
과거처럼 한 지역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익숙한 환경에서 계속 경기를 치르는 지리적 이점을 누리기 어려워진 셈이다.
이동 거리와 체력 관리만 놓고 보면 개최국 역시 다른 참가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조건에서 대회를 치르게 된다.
다음 월드컵 역시 공동 개최 방식으로 진행된다.
앞으로 월드컵 개최국은 홈팬들의 응원이라는 이점은 계속 누리겠지만 그것만으로 우승까지 이어지는 시대는 사실상 끝났다고 봐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