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와 하나은행 농구 불문율 논란, 종료 14초 전 챌린지 신청이 불러온 갈등
■ 스포츠 불문율이란 무엇인가
불문율이란 공식 규정이나 명문화된 법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 동안 구성원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지켜져 온 행동 규범을 의미한다. 예절, 직업윤리, 페어플레이 정신, 상도덕 등이 대표적이다.
스포츠에서도 불문율은 뚜렷하게 존재한다. 야구에서는 큰 점수 차로 앞선 상황에서 도루를 하지 않는다는 관행이 있고, 농구에서는 승부가 사실상 결정된 상황에서 종료 직전 무리한 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문화가 있다.
이러한 불문율은 상대에 대한 존중이라는 긍정적 의미를 담고 있지만, 문제는 이 불문율이 언제나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 WKBL에서 다시 불거진 불문율 논쟁
2025년 1월 25일, 부천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농구 WKBL 부천 하나은행과 청주 KB국민은행의 경기
경기 종료 14초 전, KB가 87-75로 앞서며 사실상 승부가 결정된 상황에서 논란의 장면이 발생했다.
하나은행의 공격 실패 후 리바운드 경합 과정에서 터치아웃 판정이 나왔고, 처음에는 하나은행 공격권이 선언됐다. 그러나 KB 벤치는 이 판정에 대해 비디오 판독(챌린지)을 요청했고, 판독 결과 공격권은 KB로 정정됐다. 이 장면 이후 하나은행 벤치는 강하게 반발했다. 이상범 감독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고, 중계진 역시 농구 불문율을 어긴 장면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 하나은행의 분노, 왜 컸나
농구계의 통념상 이기는 팀이 종료 직전에 작전 타임이나 챌린지를 요청하는 행위는 상대를 자극하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나은행 입장에서는 이미 이긴 경기에서 굳이 챌린지까지 쓰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느낄 수 있었다.
이상범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이런 예의 없는 경우가 어디 있나. 망신을 당한 기분이다라는 강한 표현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KB는 공격권을 가져온 뒤 추가 공격 없이 그대로 시간을 소모하며 경기를 마무리했다. 이로 인해 하나은행 측은 판독까지 해놓고 공격도 안 했다며 더 큰 불만을 제기했다.
■ KB의 선택, 정말 불문율 위반이었을까?
그러나 이 상황을 규정과 현실적인 경쟁 구조 속에서 다시 볼 필요가 있다.
※ 현재 WKBL 순위
● 하나은행: 13승 5패 (1위)
● KB국민은행: 11승 7패 (2위)
WKBL은 최종 순위가 동률일 경우 상대 전적과 골득실률 순으로 순위를 결정한다. 특히 KB는 2024-25시즌 4위 경쟁에서 단 1점 골득실 차이로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한 경험이 있다. 즉, KB에게 골득실과 실점 관리는 이론이 아닌 현실이다.
이 장면에서 KB가 챌린지를 요청한 목적은 득점을 더 올리기 위함이 아니라 불필요한 실점을 차단하고 점수 차를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판독 결과 공격권이 바뀌면서, KB의 이의 제기는 명백히 정당했음이 입증됐다.
■ 왜 공격하지 않았나?라는 비판의 허점
이상범 감독은 차라리 공격해서 득점을 했다면 이해했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 논리는 완벽하지 않다. KB가 챌린지를 신청하자 하나은행 벤치는 강하게 반발했고, 곧바로 강한 압박 수비를 지시했다. 이 상황에서 KB가 공격을 시도해 득점까지 했다면, 갈등은 더욱 격화됐을 가능성이 크다.
KB는 규정상 정당한 챌린지로 공격권을 되찾았고 더 이상의 감정 충돌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공격을 포기한 선택을 했다. 이는 불문율을 무시한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상황을 관리한 결정으로 해석할 여지도 충분하다.
■ 아이러니한 과거 사례: 불문율을 깬 이는 누구였나
더 흥미로운 점은, 과거 불문율 논란의 반대편에 섰던 인물이 바로 이상범 감독이라는 사실이다.
2020년 1월 15일, 남자프로농구 KBL에서 원주 DB가 서울 SK를 상대로 9점 차로 앞선 종료 직전, 두경민이 장거리 3점슛을 시도해 성공시켰다. 당시 SK는 이미 승부가 끝난 상황에서 공격을 시도했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그러나 그 공격은 골득실을 고려한 DB 벤치의 지시였고, 그 결정을 내린 사령탑이 바로 이상범 감독이었다.
즉, 순위 싸움과 골득실을 이유로 불문율을 넘어선 선택을 했던 지도자가, 이번에는 같은 논리를 받아들이지 못한 셈이다.
■ 불문율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 사건의 핵심은 단순히 불문율을 지켰느냐, 어겼느냐가 아니다.
● 규정에 어긋나지 않았는가
● 경쟁 구조 속에서 합리적인 판단이었는가
● 선수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요구했는가
이 질문에 대해 KB의 선택은 충분히 설명 가능하다. 불문율은 존중받아야 할 문화이지만, 공식 규정과 치열한 순위 경쟁이 존재하는 프로 스포츠에서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눈치를 봐야 할 일이 되는 순간, 그 스포츠는 경쟁력을 잃는다. 이번 논란은 불문율과 프로 정신의 경계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