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배구 대표팀, 8년 만에 국내파 차상현 감독 선임
한국 여자배구가 긴 외국인 감독 시대를 마무리하고 다시 국내 지도자 체제로 방향을 틀었다. 대한배구협회가 선택한 인물은 V-리그를 대표하는 전술가이자 강한 조직력으로 평가받는 차상현 전 GS칼텍스 감독이다. 이번 선임은 단순한 감독 교체가 아니라 대표팀 운영 철학 자체를 재정립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8년 만의 선택, 국내파로의 회귀
대한배구협회는 14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회관에서 열린 이사회를 통해 차상현 감독을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 공식 선임했다. 2018년 차해원 감독 이후 라바리니, 세사르, 모랄레스로 이어졌던 외국인 감독 체제가 8년 만에 막을 내린 순간이다.
협회의 선택 배경은 분명하다. 세계 배구의 흐름을 따라가기에는 전력 격차가 커진 상황에서 한국 선수들의 특성과 정서를 가장 잘 이해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김연경 은퇴 이후 뚜렷한 구심점을 잃은 대표팀에 한국형 해법을 적용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차상현 감독, 왜 적임자인가
차상현 감독은 V-리그에서 이미 검증된 지도자다. 2016년부터 2024년까지 GS칼텍스를 이끌며 여자부 판도를 바꿨고 특히 2020-2021시즌에는 컵대회, 정규리그, 챔피언결정전을 모두 석권하는 전무후무한 트레블을 달성했다.
그의 지도 철학은 명확하다. 빠른 템포, 끈질긴 수비, 그리고 선수 맞춤형 전술이다. 개인 기량에 의존하기보다 조직력을 극대화하는 스타일은 최근 국제무대에서 무기력한 경기력을 반복했던 대표팀에 가장 절실한 요소로 꼽힌다. 협회 역시 차 감독의 리더십과 국제대회 경험(과거 남자 대표팀 코치 경력)을 높이 평가했다.
이숙자 코치 합류, 세터 문제 해법 될까
이번 인선에서 또 하나 주목할 대목은 이숙자 코치의 합류다. 2012년 런던 올림픽 4강 신화의 주역이었던 그는 현역 시절 컴퓨터 세터로 불렸고 은퇴 후에도 해설위원과 정관장 코치를 거치며 현대 배구 트렌드를 꾸준히 흡수해 왔다.
현재 대표팀은 세터 포지션에서 뚜렷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터 출신 지도자의 합류는 전술적, 기술적 측면 모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차 감독이 전체 구조와 기강을 잡는다면 이숙자 코치는 세밀한 기술 전수와 선수들과의 정서적 소통을 담당하는 역할로 시너지를 낼 가능성이 크다.
1+2년 계약, 성과 압박은 명확
차상현 감독은 2028년까지 3년 계약을 맺었지만, 실질적으로는 1+2년 구조다. 올해 9월 열리는 아이치 나고야 아시안게임 이후 재평가를 받는다. 이는 협회가 장기 비전과 동시에 단기 성과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대표팀 상황을 고려하면 이 압박은 불가피하다. 지난해 발리볼네이션스리그에서 1승 11패라는 최악의 성적으로 강등됐고 올해는 VNL 출전조차 불가능하다. 차 감독은 오는 6월 AVC 네이션스컵을 시작으로 동아시아선수권, 아시아선수권을 거쳐 아시안게임까지 연속된 시험대에 오른다.
이번 선임이 갖는 상징성
차상현 감독의 선임은 단순한 보직 이동이 아니다. 이는 외국인 감독이 해답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한국 선수들에게 맞는 시스템을 다시 구축하겠다는 방향 전환이다. 김연경 이후 길을 잃었던 대표팀에 조직력 중심의 차상현식 배구가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지가 최대 관전 포인트다.
결론
8년 만의 국내파 감독 체제 복귀는 한국 여자배구의 중요한 분기점이다. 차상현 감독의 선임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현실을 직시한 선택에 가깝다. 독종으로 불리는 그의 리더십과 강한 조직력이 대표팀에 이식될 수 있다면 한국 여자배구는 다시 경쟁력을 논할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
이 승부수가 재건의 서막이 될지, 또 하나의 시행착오로 남을지는 앞으로 1년, 그리고 아시안게임 성적이 말해줄 것이다.
